
인간은 누구나 근원적인 ‘고향’을 향한 향수를 안고 살아갑니다. 비록 지상의 주소지에 몸을 누이고 있어도, 영혼이 진정으로 안식할 본향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장재형 목사의 고린도후서 5장 강해는 이러한 본향의 의미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명료하게 정리하며, 죽음을 허무가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진입하는 문턱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신앙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현세를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렌즈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영원한 기준점이 흔들릴 때 신앙이 냉소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가 지녀야 할 화목의 도를 제시합니다.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는 성경이 말하는 ‘두 세계’의 긴장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우리는 가시적인 환경에 매몰되기 쉽지만, 성경은 이 땅의 질서가 하늘의 모형임을 일깨웁니다. 히브리서가 증언하듯 현세는 영원한 심판과 이어져 있으며,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처소’는 위로를 넘어 세계관의 전격적인 재편을 요구합니다. 바울은 현세를 ‘장막’으로, 하늘의 세계를 ‘영원한 집’으로 대비시켰습니다. 이동과 소멸이 예정된 장막에 머물면서도 영속적인 집을 향해 삶의 방향을 고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이 우리를 본향으로 이끄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두 세계의 논리는 장재형 목사의 ‘모태 비유’를 통해 더욱 구체화됩니다. 태아에게 양수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출생과 동시에 새로운 빛의 세계를 마주하듯,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닌 더 넓은 실재로의 이행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죽음의 낯섦을 억지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너머에 예비된 본향이 있음을 성경의 객관성에 근거하여 설파합니다. 육신은 쇠잔해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바울의 선언은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갱신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육과 영의 대립을 실존적으로 조명합니다. 육이 즉각적인 소유와 명예에 집착한다면, 영은 보이지 않는 진리와 하나님의 갈망을 좇습니다. 세상적 성공 뒤에도 찾아오는 근원적 결핍은 우리가 물질 이상의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시편의 갈망이 존재론적 신호라면, 성령은 그 본향의 기억을 확증하는 ‘보증’입니다. 보증은 미래의 약속이 오늘에 침투했음을 뜻하며, 이는 천국 소망을 막연한 낙관이 아닌 삶을 변화시키는 실질적 능력으로 만듭니다. 하늘 시민권자로서 세상의 가치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태도는 영원의 관점에서 윤리적 중심을 지키게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장막의 유한함을 인생의 정서적 실제와 연결합니다. 건강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불안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손으로 지으시지 않은 ‘하늘의 집’을 확신했습니다. 이 믿음은 현실의 상실을 인정하되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용기를 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고난 중의 탄식이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정당한 과정임을 강조하며, 성령의 보증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는 천국 소망이 삶을 더욱 엄숙하게 만든다는 바울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공포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매일이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실재적 가치를 일깨우는 장치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성취의 경쟁이 아니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장막 안에서도 하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곧 영생의 삶입니다.
죽음 이후의 확신인 “주와 함께 거함”은 위로의 정점입니다. 천국은 장소적 개념을 넘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동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말한 ‘덧입음’의 소망은 기독교 신앙이 영혼의 안락에 머물지 않고 부활과 새 창조의 완성을 지향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몸을 경멸하는 허무주의를 거부하고 오늘의 삶을 더욱 책임 있게 보듬게 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의 자리에서도 이 소망은 빛을 발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요한복음 14장의 약속을 남겨진 자가 오늘을 견뎌낼 동력으로 해석합니다. 본향의 확신은 떠난 자의 안식과 남겨진 자의 순례를 믿음 안에서 연결합니다. 빌립보서가 말하는 기다림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영원과 잇닿아 있는 삶의 재배치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타인을 향한 긍휼로 이어지며,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삶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모든 흐름의 정점은 ‘대속과 화목’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십자가 대속을 통해 열린 화목의 길을 선포하며,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모범이 아닌 삶의 근본 동력임을 역설합니다. 화목의 복음은 인간관계의 패러다임을 혁신합니다. 육체를 따라 사람을 판단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서로를 대하게 합니다. 이는 분열된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게 하는 실제적인 힘이 됩니다.
바울이 말한 ‘화목의 직책’은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신앙인을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정의하며, 세상 속에서 갈등을 종식시키고 관계를 복원하는 중재자로 살 것을 촉구합니다. 이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자기를 낮추는 결단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세상의 계산법을 버리고 하늘의 습관을 따르도록 돕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재형 목사는 본향을 사모하는 삶을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연습’으로 정의합니다. 기도는 하늘의 공기에 적응하는 호흡이며, 말씀은 가치관을 정련하는 과정입니다. 본향을 아는 사람은 현실에 무책임하지 않으며, 오히려 심판대의 빛 아래서 오늘의 작은 섬김과 용서를 영원과 연결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붙들려 화목의 길을 걷는 순례자는, 장막의 불안을 성령의 보증으로 견디며 끝내 돌아갈 집을 향해 담대히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