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환란 속에서의 신앙적 태도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여러 차례 설교와 강연을 통해, 신앙인이 고난과 환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강조해 왔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고난의 시기와 어려운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이며, 이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7절에서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신 것도, 고난의 때에 헐벗고 초라한 모습으로만 있지 말고 오히려 더욱 의연하고 거룩하게 서야 함을 보여주는 예로 이해된다. 이는 겉으로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슬픔을 부각시키기보다, 우리의 내면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튼튼하게 서 있어야 함을 뜻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 믿는 사람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고 역설한다.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염려가 지배적이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두려움을 몰아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란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이후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 가르친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시기를 예로 들면서, 과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보다 사람과 더 가깝게 얽혀 살았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이 마음껏 움직이기 어렵고, 만나서 교제하기 힘든 상황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께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처럼 제한된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본다. 사람과의 물리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시점에, 대신 하나님과의 거리만큼은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느끼는 불안, 외로움, 답답함은 하나님 앞에서 회복될 수 있으며, 특별히 이 시기에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더욱 깊이 보고 들으며 묵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사순절 기간의 예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는 기간이다. 이 사십 일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 고난을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는 데 있다.
또한 장재형목사는 소의 위가 네 개인 점을 들어, 한 번 먹은 것을 밤에 다시 꺼내서 되새김질하듯, 우리도 한 번 본 말씀을 다시 되새김질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성경 말씀을 몇 번 읽고 그냥 지나치는 수준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새기고, 매일같이 다시 꺼내어 묵상하고 실천하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말씀으로 풍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소”라는 표현을 쓰면서, 마치 위가 네 개인 소가 되새김질을 거듭하듯, 성경 말씀을 또다시 꺼내어 맛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깊이 받아들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특히 로마서 공부를 권면한다. 사도 바울의 복음 신학이 집약된 로마서는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의, 그리고 인간의 죄와 구원, 의롭다 하심, 성령의 역사, 교회의 삶 등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체계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번 환란 덕분에 로마서를 달통했다”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집중해서 공부해 보라고 권한다. 자신이 이전에 여러 곳을 다니면서 로마서를 강의한 자료도 있으니, 그것을 집에서 의무적으로 공부하고, 자녀들에게도 쉽게 잘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고 독려한다. 자녀들은 이미 지적인 역량이 높아졌으므로, 핵심을 잘 정리하여 사영리와 같은 구원론의 기본 교리를 바르게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기본 자세가 중요하듯, 아이들에게도 복음과 구원의 핵심을 ‘기본’으로 심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밖에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힘든 시기야말로, 이처럼 신앙의 기본기를 다시 닦고 말씀을 통찰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21장 8절에서 말하듯,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라는 구절은, 이 기간이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동시에 놓인 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영혼뿐 아니라 육신도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고, 세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우리를 몰아붙일수록, 우리의 시선은 더욱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 장재형목사의 권면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예수님을 어떻게 친밀히 알 수 있을까? 장재형목사는 그 길이 바로 ‘말씀’을 통하는 것이라 말한다. 로마서 10장 6절부터 8절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굳이 하늘에 올라가거나 무저갱(음부)에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시며, 성경은 그분을 알게 해주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뜻이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롬10:8)는 이 구절은, 예수님이 직접 우리 옆에 와서 자기를 보여 주시지 않아도, 성경을 통해 충분히 예수님을 알고 믿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으로 성경을 소리내어 읽고,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며, 동시에 입을 통해 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예수님을 ‘보는’ 길이자,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길이다. 전도서 5장 2절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경청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어둠의 시대이자 환란의 시대에 우울하게 지내지 말고, 이 고독한 기간을 하나님이 주신 퇴수(retreat) 시간으로 삼으라”는 표현으로 정리한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3일 동안 금식하며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을 때도 중요했지만, 그 후 3년의 아라비아 체류 기간이야말로 바울의 신학과 사역의 토대를 다졌다는 점을 상기시킨다(갈1:15-17). 그처럼 일정 기간 세상의 활동에서 벗어나, 오직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며 깊은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야말로 영적 깊이를 키우고, 새로운 비전을 받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시점은, 자칫하면 인터넷 등 온갖 유혹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기다. 장재형목사는 “쓰레기통을 뒤지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한다. 이 쓰레기통은 곧 게헷나(지옥)와 같다고 하며, 음란물이나 쓸데없는 온라인 정보, 험담과 분노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차라리 이 시간을 통해 거룩함을 추구하며, 마음과 영과 육체를 깨끗이 하라고 권면한다(고후7:1).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권면했듯, 신자도 이러한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환란 속에서의 신앙적 태도는 명확하다. 첫째, 고난의 때에 겉으로만 슬퍼하거나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답게 의연하고 밝은 영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둘째, 사회적 거리두기나 외부 환경의 제약을 하나님께 다가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셋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그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며, 세상의 음란과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넷째, 로마서나 시편 등 성경을 집중하여 공부하고 묵상함으로써, 영혼의 양식을 되새김질하듯 되풀이해 내면화해야 한다.
환란은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그 기간에 쌓인 말씀의 양분과 영적 근육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고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사순절 기간이나 그 밖의 특정 절기 역시, 단순히 ‘의무적인 금식과 절제’의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복음의 본질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될 때, 우리가 한 단계 더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그는 또한 건강관리를 조언하며,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문에 고정하는 철봉 등을 활용해 매일같이 운동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신앙생활은 영혼과 육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생활이기도 하다. 영적 건강이 곧 육체적 건강과도 맞닿아 있으며, 육체가 활력을 얻을 때 영적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의 몸과 마음이 함께 튼튼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충만한 예배와 봉사를 드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궁극적으로 장재형목사는, 환란 가운데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 묵상하라고 권면한다.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오늘날 신자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하다는 것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이 약속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우리가 이미 구속받은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설령 물속을 지나고 불 속을 통과하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결코 침몰하거나 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가 된다.
여기에 “네가 내 눈에 보배롭다”(사43:4)고 하신 말씀까지 곁들여 기억한다면, 환란 중에도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향한 크신 사랑을 여전히 놓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다. 이런 확신이 있을 때, 신자는 세상의 두려움과 염려를 떨쳐내고, 오직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정체성’의 문제로 해석한다. 우리가 신앙의 힘을 잃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주님의 것”이며,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 순간, 그 어떤 환경도 우리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없다.
이처럼 환란을 대하는 신앙적 태도는,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해 있다.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이뤄주신 구원이 없다면, 고난에서 소망을 찾는다는 말 자체가 공허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부활의 소망이 자리잡고, 그 소망을 통해 두려움 대신 믿음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여러 모임과 설교에서 강조해 왔으며, 특히 부활절을 맞아 ‘올리벳담론(Olivet discourse)’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을 나누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올리벳’은 주님의 말씀이 선포된 거룩한 자리이자, 산상수훈이 임했던 곳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비록 실질적인 수련회를 가질 수 없는 환경이지만, 수요예배와 주일예배, 그리고 각자의 개인적 묵상을 통해 그 진리를 마주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일련의 권면들은, 장재형목사가 고난의 시기에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 더욱 빛나는 때는 평온할 때가 아니라, 바로 고난 중에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에 집중하는 순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말씀에 근거한 영적 성장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신앙생활은 단지 감정적, 신비적 체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명확히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는 말이다.
그가 특히 로마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로마서가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의, 인간의 죄성,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깊이 숙지해야 할 보물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2003년에 미국에서 로마서 강의를 한 적이 있으며, 그 강의록을 최근에 다시 읽었을 때 깊은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강의 내용을 공부해 보도록 권하고, 자녀에게도 쉽게 해설해 주도록 독려한다.
그가 이처럼 로마서를 강조하는 것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예를 들어 음란, 폭력, 탐욕, 우상숭배 등—이 로마서 1장에 이미 지적된 인간의 죄악상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 이하에서 하나님의 분노가 왜 임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부패하고 타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통해 “우리가 원래는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가 만연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이를 모르는 상태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극과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로마서를 통해‘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면, 현대 사회의 혼돈도 말씀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장재형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또한 시편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시편은 인간 실존의 모든 정서가 담긴 책으로서, 삶에서 마주하는 기쁨과 슬픔, 절망과 소망, 고독과 위로 등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자들은 시편을 자주 읽게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시편 150편을 하루에 2~3편씩 조금씩 읽어나가면, 한 달 안에도 충분히 완독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시인의 심정을 만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시편을 읽고, 외우고, 깊이 묵상함으로써 ‘자기 자리’를 찾으라고 권면한다. ‘타락’이란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하는 것이고,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딤전2:5)가 되셔서,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은, 단지 지식을 쌓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말씀이 우리의 영과 혼, 그리고 육체까지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역설한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붙드는 이들은, 거룩함과 깨끗함을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 영적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기도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몸도 잘 관리해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팔굽혀펴기 200번, 스쿼트, 문에 매다는 철봉 운동 등을 구체적으로 권장하는 이유는, 영육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몸소 실천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는 또한, 교회 공동체 내에서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서로에게 가르치며, 전하는 문화를 만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미 높은 지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에, 단지 교회학교에서 형식적으로 배우는 것 이상의 체계적이고 단단한 복음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사영리나 구원의 기본 교리를 명확하게 전해 주고, 자녀들이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인터넷 시대의 쓰레기통”으로부터 자신과 자녀를 지키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처럼, 세상적인 자극과 음란, 폭력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영혼에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의 “육과 영의 모든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는 말씀을 상기시키며,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 이 거룩함의 명령은 오늘날에도 긴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국 말씀에 근거한 영적 성장은, 사람이 타락한 본성을 벗고 거룩함을 이루는 과정을 포괄한다. 로마서를 통해 복음의 핵심을 파악하고, 시편을 통해 인간의 정서를 이해하며, 전반적으로 성경 전체를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질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게 되고(사43:1 참조), 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변치 않는 진리 안에서 평안을 찾는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이사야 43장이 말하고 있는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을 깊이 품으라고 거듭 당부한다. 이는 단순히 역사 속 유대 민족에게만 국한된 약속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모든 신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직접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는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셨으므로,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
그 주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불길을 통과할 때 불꽃에 사르지 아니하며, 물살을 헤치고 나갈 때 침몰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는다(사43:2). 이사야 43장 3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라고 친히 밝히신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우리를 구원자로서 지키신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컨대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말씀에 근거한 영적 성장이란, 이처럼 구체적으로 로마서를 탐독하고, 시편을 묵상하며,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며, 기도하고, 실천함으로써 서로를 세워 주는 문화가 자리잡을 때, 신앙은 더욱 깊어지고 탄탄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3. 구원과 화해의 길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메시지의 최종 지향점은 “구원과 화해의 길”이다. 이 길은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여정이다. 기독교 신앙의 요체는,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로 인해 멸망의 길을 가던 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 생명의 길로 초대받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지만,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치르심으로써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될 수 있었다. 로마서가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시편은 이 구원의 체험을 시인의 언어로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장엄하게 노래한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은, 바벨론 포로기처럼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이 여전히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어, 구원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도 실현되는지 알려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해석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물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 즉 주권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지어 다른 길로 빠져나가려 해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를 돌아오게 하시는 섭리를 펼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서(딤전2:5), 이미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 역할을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자”(롬5:1)는 바울의 선언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얻게 되는 최종 상태가 ‘하나님과의 화해’임을 드러낸다.
이 “화해의 길”은 물론 신자 개개인의 구원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교회 공동체와 더 나아가 세상 모두를 향한 구원의 초청이기도 하다. 장재형목사는 세상 각 영역이 부패하고, 죄악이 극에 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거듭 강조한다. 로마서 1장에서 인간의 죄가 극도로 부패한 모습을 그리지만, 그 결론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롬1:17)고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능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한 구원과 화해는 단지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을 통찰하는 안목을 제공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왜 이렇게 꼬여 있는지, 왜 죄와 부패가 계속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지를 성경은 분명하게 밝혀 주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세상의 비밀을 여는 바코드는 바로 말씀”이라는 표현으로 이를 설명한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도,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죄의 기원이 분명해지고, 그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또렷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복음을 온 만방에 전하는 일로 확장된다.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명령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는 대위임령이다. 장재형목사는 로마서를 이해하고, 시편을 묵상하며,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먼저 죄에서 돌아서야 한다.” 예수님이 임하셔야 할 자리는 우리가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이나, 세상에 대한 탐욕, 음란함, 거짓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수 없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쓰레기통 뒤지기’라고 지적하며, 많은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와 자극을 끊임없이 섭취하는 실태를 우려한다. 그렇게 어둠에 잠식되기 쉬운 시대일수록,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밝히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결국 구원과 화해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과 말씀 순종을 통해 열리며,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증거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장재형목사는 여러 예배와 설교, 강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개인의 경건생활, 가정의 신앙교육, 교회 공동체의 예배와 봉사, 그리고 사회와 세계 선교까지 모든 영역이 “구원과 화해”라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사야 43장을 예로 들며,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실에 주목한다. 그 상황에서 백성들은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사43:4) 바라보신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죄와 포로 상태에서 고통받는 인간을 향해 구원과 해방을 선포하시는 구체적 예시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현재 포로 상태에서도 그분이 구원을 약속하신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시대건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어려움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숨겨져 있으며, 그 약속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야말로 이 모든 구원의 역사에 정점을 찍는 사건이며,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신비를 완성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왜 예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이고, 영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이며, 천국을 약속받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예수 없이는 우리는 영원한 멸망과 파멸의 길을 피할 수 없지만,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고 본래의 자리(정체성)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장재형목사가 설파하는 핵심 메시지는 “자기 정체성과 자리를 점검하라”는 요청으로 집약된다. 환란의 시기, 고난의 때,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 닥쳐도, 이것을 오히려 ‘영적 퇴수(retreat)’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예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내려놓으며,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점검하자는 것이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지냈던 3년 동안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결정되고, 사역을 위한 신학이 정립되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고독의 시간을 통해 더 깊은 하나님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장재형목사는 끊임없이 성경 본문을 인용하고, 자신이 가르치고 연구해 온 로마서 강의를 함께 나누며, 시편 묵상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공한다. 또한 가정 내에서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말씀을 읽는 실천적인 방법들—예를 들면 하루에 몇 장씩 시편을 가족이 함께 읽고 나누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개인의 건강까지 챙기라고 조언한다.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지 않기에, 오래 집에 머무르는 환경에서도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스스로를 가꾸면서 거룩과 절제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통해 신자는 환란이 지나간 후에도 강건한 육체와 넉넉한 믿음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구원과 화해의 길은 결코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이사야서에서부터 신약의 복음서, 그리고 로마서와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방대한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 주제이자,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보여 주신 생명의 길이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너는 내 것이라”(사43:1)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다”(사43:4)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음성을 믿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이미 하나님께 속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로서 새 생명을 누리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길이 곧 “화해”라고 부른다. 인간이 죄로 인해 끊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복원되고, 그에 따라 개인의 내면에는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자리 잡는다. 이것이 확대되어 가족, 교회, 사회 전체가 화목해지는 과정에 이르면,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역사적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 안에서 구원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바라는 ‘구원과 화해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다.
그의 메시지를 정리하면, 첫째, 환란은 지나가나 그 시기 동안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른 태도로 살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특히 로마서, 시편)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고, 죄로부터 벗어나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받은 존재로서, 개인의 정체성과 자리를 회복하며, 그것을 세상 속에서 구현해야 한다. 넷째, 이를 위해 자신의 영육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를 세워주며, 복음을 전해 나가야 한다.
결국, “이스라엘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렘21:8)라는 경고, 그리고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롬10:8)는 복음의 진술은, 신자들에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촉구가 된다. 장재형목사가 끊임없이 강조해 온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생명의 길이며, 그 길로 가는 사람은 환란 앞에서도 두려움을 떨치고, 말씀으로 충만하며, 예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장재형목사의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환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화해를 통한 새 생명을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세상이 혼란스럽고, 다양한 위기가 찾아와도, 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더욱 성숙하며, 나아가 이웃과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존재로 서야 한다. 이것이 장재형목사가 줄곧 외쳐온 복음의 핵심이며, 환란의 시대에 꼭 필요한 영적 안내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