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 하나님의 나라


Ⅰ.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을 통해 바라보는 하나님의 나라

장재형목사는 교회 역사와 성경의 핵심 진리를 강조하면서, 기독론·구원론·종말론이라는 세 가지 교리가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지점으로 이어지는지를 설파해 왔다. 그는 먼저 기독론이란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교회는 역사를 통틀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veredeus verehomo)”라는 결론을 니케아 회의(325년)와 칼케톤 회의(451년) 등을 통해 정리하였다. 장재형목사는 이 결정이 기독론 이해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의 모든 고통과 연약함을 직접 체휼하신 참 사람이시다. 이 신비로운 양면성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결국 구원론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토대가 된다고 장재형목사는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축소하는 어떤 신학적 입장도 결국 기독론의 뼈대를 무너뜨려 구원론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역사적인 1517년 종교개혁을 거론하면서 장재형목사는 루터와 칼뱅 등 개혁자들이 “구원은 오직 믿음(Sola Fide)과 오직 은혜(Sola Gratia)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고 선언하였던 사실을 중요하게 되새긴다. 이는 중세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멀어져, ‘믿음과 은혜’만으로 주어지는 구원을 다른 요소들과 섞어버린 결과 신앙이 희석되고 왜곡되었던 것을 바로잡으려던 외침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종교개혁의 구원론은 엄밀히 말해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호소였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개혁교회가 주장하는 ‘믿음으로만, 은혜로만’이라는 구원론은 매우 성경적이고 옳은 교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란 단순히 교회 교재나 교육 자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성도의 삶 속에서 생명력 있게 작동해야 함을 덧붙인다.

장재형목사는 이어서, 기독론과 구원론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반면, 종말론에 대해서는 교계 안에서 분분한 의견이 많음을 언급한다. “종말론이 다루는 핵심 주제는 ‘때와 시기(Time and Date)’”라고 하면서, 여기서의 ‘때(Time)’는 헬라어로 크로노스(Chronos)이며, ‘시기(Date)’는 카이로스(Kairos)라고 설명한다. 크로노스적 시간은 양적이고 연속적인 시간 개념을 가리키며, 카이로스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질적인 때를 뜻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바로 이 ‘카이로스적 사건’에 해당한다고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그런 결정적 사건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B.C.와 A.D.가 갈리는 그 시점)는 역사 자체를 가른다. 따라서 종말론에서 궁극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과정과 그 구체적 순간이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에 따르면, 성경은 종말에 대한 구체적 예언과 그 불확실성, 그리고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그 때와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사도행전 1장 7~8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이 이를 잘 보여준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에 착안하여,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되 잘못된 종말 예측이나 두려움에 휩싸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참된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모습인가. 장재형목사는 창조-타락-구원-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지는 구원사의 흐름을‘사영리’라는 방식을 통해 자주 설명한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 곧 파라다이스에서 살았으나, 죄로 인해 쫓겨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나타나듯,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인간에게 영생을 허락하셨고, 그 구원의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나라의 회복”이라고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사도행전 1장 6절의“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도, 결국 잃어버린 나라—곧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의로운 세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에는 잃어버린 에덴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며, 그것이 곧 “천국을 향한 본능적 소망”이라고 그는 풀이한다. 그리고 그 완성의 시기는 비록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분명히 성취될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하나님나라 교리의 핵심 중 하나로 ‘의(義)’의 문제를 강조한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가 충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불의한 세력이 결국 힘을 잃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통치가 실현될 때,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계”(아모스 5장 24절 참조)가 온전히 펼쳐지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역사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불의에 맞서 의를 세우라는 명령과 함께 도래해 가는 하나님의 통치라고 보았다. 그가 걸어온 사역의 방향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가르침을 교회와 성도들이 몸소 실천하도록 돕는 데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장재형목사는 사람들의 일상적 관심이 주로 재물이나 물질적 풍요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지나치게 고민하지만, 정작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섬기며, 의를 위해 고난받는 일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언급하며, 참된 가치는 이 땅의 소유에 국한되지 않고, 영원한 나라에 쌓이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곧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마5장 6절)는 역설을 경험하는 길이라며, 결국 하나님나라와 의를 위해 삶을 드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은총을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래하는가. 장재형목사는 마태복음 13장 등에 나오는 천국 비유들을 예로 들며,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겨자씨와 같아서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자라나면 매우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게 된다고 가르치신 것에 주목한다. 또한 누룩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서서히 역사하여 결국 온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종말론적인 비전과 연결된다고 본다. 장재형목사는 “우리 교회는 늘 사영리와 함께 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가르쳐왔다”며,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회복해야 할 파라다이스를 갈망하게 되고, 그 갈망이 곧 ‘주기도문’에 나타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로 응집된다고 해설한다.

그렇게 볼 때, 기독론은 ‘누가 구원자이신가’를 확립하고, 구원론은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설명하며, 종말론은 ‘구원받은 이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봐야 할 나라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삼위일체적 구도 안에서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장재형목사는 기독론을 통해 구원의 근거가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확실히 하고, 구원론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전적인 은혜에 의지해야 하는지 자각하며, 종말론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우리가 순종하고 전도해야 한다는 진리를 되새긴다. 그리고 그 교리들은 그저 지식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현실에 구현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장재형목사가 이끄는 교회와 사역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토대를 세우는 데 힘써왔다. 그는 오랜 세월 목회와 선교 현장에서 가르치면서, 교리의 중요성이 마치 몸의 뼈대와 같다고 거듭 말해왔다. 뼈가 온전해야 몸 전체가 건강하게 움직이듯, 예수님의 정체성과 구원의 방식, 그리고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계획을 견고히 붙들어야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향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적 기초가 바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토대라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 앞에서 매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연 나는 무엇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정말 헌신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단지 과거나 미래 한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우리가 종말론을 연구하는 이유 역시, ‘때와 시기’를 알아내어 세상적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직 예수님께서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그 나라가 이미 임하기 시작했음을 믿고,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며 의로운 삶을 통해 그 통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종말론적 신앙이다. 종말은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온전히 회복해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을 뜻한다. 그런 이유로,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날마다 품어야 할 하나님나라의 꿈과 소망을 강조한다.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 불의가 가득한 이 땅에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될 것”이라는 구약의 선지자적 비전을 동시대에도 이어받아, 우리의 시선이 물질이나 일시적 성공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에 고정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Ⅱ.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장재형목사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 대한 묵상을 기반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구체적으로 해설한다. 사람들은 종종 이 말씀을 지나치게 영적이거나 추상적으로만 해석하여, 마치 현실의 필요를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오해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장재형목사는 예수님께서“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그 자체를 소홀히 여기라는 말씀이 아니라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설교와 강의에서 늘 “음식이나 의복도 다 필요하지만, 하나님나라는 그 이상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전체에서 지적하시는 ‘재물이나 외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한 신뢰를 두라는 권면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과 관련해, 구약의 엘리야 이야기를 대표적 예시로 든다. 열왕기상 17장 1~16절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땅에 가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서 까마귀의 공급을 받게 하셨다. 이후에는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로 그를 보내셨는데, 그 과부 역시 가뭄으로 인해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떡을 만들어 자기와 아들이 먹고 죽으려는 처지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먼저 내게 떡을 구워 달라”고 요청했고, 과부도 믿음으로 순종했다. 그 결과, 그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비가 올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건을 두고, “비워 내는 믿음(캐노시스, kenosis)이 결국 기적을 가져온다”라고 풀이한다. 사르밧 과부의 입장에서는, 그 마지막 양식마저 바치면 당장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말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과부는 그 작고 보잘것없는 양식을 먼저 엘리야에게 드렸고, 결과적으로 자기 아들과 함께 여러 날 먹고도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경험한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이 더해진다는 주님의 말씀을 구약의 사건을 통해 체화하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현실적으로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라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위한 결단을 내릴 때, 실제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급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역학’을 경험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비슷한 논리를 신약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누가복음 9장 10~17절에 기록된 이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기적이다. 광야(빈들)에 모인 많은 무리에게 먹을 양식이 부족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오직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의 떡은 거칠고 투박한 보리떡이며, 물고기도 잡다한 작은 생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축사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고, 그 결과 남자만 5,000명가량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풍성한 기적이 일어났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의 삶이 어떻게 물질적, 현실적 공급까지도 넘치게 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고 말한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보잘것없는 자원의 전부를 주님께 내어놓는‘비움’의 태도가, 엄청난 ‘충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그저 신비롭고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마다 체험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를 상징한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이 ‘오병이어’처럼 수천 명분의 양식이 기적적으로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는 없겠지만, 영적인 측면에서나 실제 일상적인 필요에서도 하나님이 언제나 채우신다는 확신,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은혜가 부어진다는 진리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장재형목사는 강조한다.

이러한 구약과 신약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를 것”이라는 성경의 역설을 알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굳이 인간적인 이치를 따지자면, 배부르려면 빵을 더 구해야지 왜 의를 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예수님의 말씀에는 단순히 물질적 축복을 넘어서는 심오한 영적 원리가 스며 있다고 해설한다. 그것은 곧 “나의 욕심과 계산,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신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원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몸소 체험했고, 교회 공동체 안에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고자 했다. 그가 “재정적, 사역적, 인간관계적 어려움들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면, 결국 하나님이 다루실 일”이라고 말해온 것은, 단지 관념적 확신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과 그의 사역 현장에서의 체험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맥락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적 성공이나 물질을 최종적 목적지로 삼지 말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표현은 곧 “하나님나라의 정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삶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세계 속에서 나타나도록 기도하고 헌신한다”는 결단을 담고 있다. 그는 이를 “갈급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영적 갈급함은 결코 우리를 궁핍함으로 몰고 가지 않고, 도리어 하늘의 은혜로 충만케 만든다는 점이 성경과 교회사의 다양한 사례에서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장재형목사는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마태복음 6장 19~20절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재물이나 명예, 권력은 언젠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한 수고와 헌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상급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실제적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확실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장재형목사에게 있어 그보다 더 확실한 세계는 하나님나라다. 그는 그 나라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물, 재능 등을 아낌없이 드리는 모습을 목회와 선교 사역 전반에서 보였고, 동시에 “모두가 이렇게 살기 쉽지는 않지만, 누구든지 진정으로 그 길을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배부르게 채우시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간증한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교회 총회나 각종 모임에서 늘 “지금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현실적인 문제만을 놓고 염려하며 재정을 쫓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의를 위해 수고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반드시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마태복음 6장 25절 이하의“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는 말씀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며,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적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니 지나치게 물질에 묶여 살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와 기쁨을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들을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며, 실제로 채우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키며, 청중에게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묻는다.

그가 목회 현장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이 말씀을 온전히 믿는 자는 결코 게으르거나 방종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믿음은 무작정 손 놓고 있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용기 있게 헌신하고, 더 적극적으로 의를 추구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장재형목사는 해설한다.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자는, 세상의 평가나 물질 부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선한 일을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구체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의를 구하며 살 수 있는가. 장재형목사의 사역을 통해 비추어 보면, 그 답은 늘 ‘예배와 말씀에 대한 순종, 그리고 이웃에 대한 적극적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교리는 이론이 아니며,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비로소 뼈대에 살이 붙고 피가 돈다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구원이 어떤 은혜인지,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체험한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불의한 현실 앞에서 올바른 판단과 결단을 할 수 있는 통찰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계’를 예비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간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이라고 부른다.

그는 “28년이라는 긴 사역 기간 동안, 교회가 얼마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달려왔는지 돌아보자”라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한 다양한 간증을 전하기도 했다. 비록 외부적 위협과 물질 부족, 수많은 낙심의 요소가 있었을지라도, 오히려 그럴수록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길을 지켜나갔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엘리야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까마귀의 양식과 사르밧 과부의 기름, 그리고 광야에서 터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이 시대에도 재현되는 것은, 바로 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 때문이라고 장재형목사는 설명한다.

결국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은, 구약과 신약을 꿰뚫고 교회의 역사 전반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과도 같다. 장재형목사의 목회적 실천 또한 이 말씀을 축으로 삼아, 기독론과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에 입각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비전을 제시해 왔다. 그는 현대 교회가 물질주의나 세상 풍조에 흔들리는 것을 경계하면서, 교회가 본연의 임무인 복음 전파, 의를 추구하는 삶, 나아가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사랑을 새롭게 붙들도록 도전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주기도문의 간구가 실제화되는 길은, 성도 개개인이 먼저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고, 하나님나라를 향한 갈급함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공급은 언제나 넘치게 부어진다는 것을 장재형목사는 확신한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2주 후에 있을 총회나 교단의 큰 모임을 준비하면서, 과연 무엇을 돌아보고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었는가, 아니면 물질과 인간적 안정에 치중했는가”라는 질문을 성도들과 함께 숙고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는 이들이라면, 그 우선순위를 실제로 삶과 사역에서 증명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한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지난 7년, 10년, 혹은 더 긴 시간에 걸쳐 걸어온 길을 회고해보면, 수많은 결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다 간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모든 스토리가 마치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그리고 광야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일으키신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충만’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바는 명확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마태복음 5장 6절과 10절의 말씀은 역설적이면서도 강력하다. 물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지 않고 그 나라를 사모하지 않기에 영혼이 메마른 것일 수 있다. 반대로, 현실의 조건이 어떠하든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의를 위해 고난받는 자는 이미 “배부른 자요, 부유한 자”라고 장재형목사는 외친다. 그가 이 주제를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설교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교회가 단순히 종교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나라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불의와 갈등의 한복판에서, 교회가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세상의 논리에 휘둘리는 모습도 목격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장재형목사는 다시 한 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하나님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곧 이 땅의 불의가 종식되고, 가난한 자가 복을 받고, 병든 자가 치유되며,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만물을 회복하신다는 뜻이다. 교회가 이 거대한 비전을 선포하고,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직과 사랑과 자비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때, 세상은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를 조금씩 맛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염려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채우시는 풍요를 누린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위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다양한 실천적 사역들을 펼쳐 왔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 명제는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할 때, 세상도 달라진다”는 확신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관점에서도, 단순히 어느 순간에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세상이 끝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과 달리, 예수님의 재림 때 온전히 완성될 하나님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미리 살아내는 교회의 소명과 맞닿아 있다. 마치 예수님의 초림으로B.C.와 A.D.가 갈라졌듯이, 교회가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낼 때, 주변 사회는 옛 삶의 방식과 새 창조가 교차되는 순간들을 목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되새기고, 실제로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나라에 둔 채, 의를 세우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때때로 어려움을 동반할지라도, 엘리야에게 하늘의 양식이 예비되었듯,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인해 풍성함을 누렸듯, 그리고 광야의 수많은 무리가 오병이어로 배부름을 체험했듯, 그리스도인은 매일매일 기적 속에 살아갈 수 있다고 장재형목사는 확신한다. 그 확신은 개인의 헌신과 전체 공동체의 비전에까지 이어져,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망한다’는 종말론적 대망으로 완성된다.

장재형목사가 그토록 힘주어 말하는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은 단절된 교리가 아니라 긴밀히 연결된 유기체이며, 그 중심에“의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 이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로 시작된 것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확장되어 가며,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전진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언제나 이 통치를 최우선으로 구해야 하고, 그 의를 위해 스스로를 비워 드릴 때, 결과적으로 모든 필요가 채워지고 넘치는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게 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가라는 도전은 결코 무거운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장 복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삶의 원리가 수많은 예화와 간증을 통해 입증된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교회가 이 길을 더욱 과감히 걸어갈 것을 촉구한다.

이 시대를 향한 장재형목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 훗날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실제로 이루어 가는 현재적이자 미래적인 나라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성도 개인의 소명이다.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성도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름을 얻는’ 영적 기쁨과 충족을 누릴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힘겨워 보인다 해도, 믿음으로 우리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내어놓는다면, 하나님은 지금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기적이야말로 “하늘에 쌓은 보물”이며, 언젠가 종말론적 완성을 통해 하나님 앞에 드러날 영원한 열매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교회와 성도들이 힘을 모아 복음 전파와 의를 위한 삶을 지속해 나갈 때, 궁극적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은혜가 점점 더 풍성히 펼쳐질 것이라 확신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 기쁨과 소망에 동참하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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